보현화(普賢華)

●불교&자료&관심사●/불교이야기·불교뉴스

53선지식 특별법문-방송인 이상벽님(입춘 삼재소멸 기도일에)|

보현화 2010. 3. 1. 21:50

  

              

                                          53선지식 특별법문-방송인 이상벽

                                                      

                                                     2010.2.4/한국불교대학관음사 4층 옥불보전


        -우리에게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상벽님이 입춘 삼재소멸 기도일에

        우리절  53선지식 특별강의에 초빙되어 특유의 말솜씨로 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언어의 깊은 마술에 빠져

        들게 하였다. 13년 동안 최고의 인기속에 방송된  <아침 마당> 덕분에 우리절 신도는 물론  특별 강의를

        들으려는 미래의 우리절 종자 인연분들 특히 젊은 층의 호응이 눈에  띄었다.-

 

     

        이상벽....네 감사합니다. 저도 어디 가든지 마이크만 주면 말품께나 팔던 사람인데 오늘은 기가 죽어도 보통

        죽는 게 아니라 기가 아주 팍 죽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법당에 많은 분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참석을 해 주신

        것에 대해서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 뒤에 잘 들립니까? 저 뒤에 계신 분이 저한테는 아주 어려운

        분인게 이 앞에 계신 분들은 어차피 끝까지 들을 용의가 있으신 분인데 저 문 가까이 있는 분은 딱 앉아

        있다가 재미 없기만 해봐라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갈 분입니다.(웃음~~) 잘 부탁합니데이~~(박수~~)

        요새는 우리나라가 도로가 얼마나 잘 놓인 나라인가 하면 세계 한 4위 정도 된다 그래요.

        조그만 땅을 열심히 개발을 하고 동네방네 길을 터놔서 도로 점유율이 세계 4위다. 그러다 보니까 과거에는

        대구를 한번 왔다 가려면 하루 저녁을 묵어가는 그래서 이 동네 식당도 되고 여관도 되는 모두 다 이렇게

        돌아가는 무슨 이유가 되는데 요새는 KTX 타고 1시간 40분이면 오니까 왔다가 점심 먹고 바로 가버리니까

        장사도 안 되고 게다가 사투리 문화가 자꾸 희석이 되는 게 아쉽습니다. 주지스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하시니까 서울서 온 저는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 제가 교황 바오로 2세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니까 꽤 오래된 얘기입니다만 가수 현철씨 하고 대구에 공연을 한 번 왔었어요.

        왔다가 어디 레스토랑에 이렇게 앉았는데 한 팔순 이상쯤 돼 보이는 노보살님들 대여섯 분이 이렇게 둘러

        앉으셨어요. 아마 고등학교 여고 동창생 정도쯤 되시는 것 같애요. 그런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맞기는

        다 맞는데 줄긋기가 안 되는 거예요. 한 할머니가 “야야 교황 바오로인가 그 분이 돌아 가셨더래이 ”

        그러니까 “예~”(웃음~) 복 받으십시오.” 그래 인제 “교황 바오로인가 그분이 돌아가셨더라. 사람들이

        그러이 모여 가지고 줄서서 우니까 나도 영 마음이 안 좋더라. ” 고기까진 잘 되었어요. 옆에 있는 한

        할머니가 “야야 예수도 죽었다 카더라”(웃음~) 여기서부터 뭔가 잘못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사람도 와 죽었는데?” 한 할머니가 “못에 찔리가 죽었다 카든데”(웃음~) 맞기는 다 맞잖아요.

        그죠? 그러더니 한 할머니가 “아! 그렇구나. 그 영감제이 머리 풀어헤쳐 가지고 맨발로 걸어 댕기

        샀더니만 못에 찔렸구나.”(웃음~) 그러니 한 할머니가 “예수가 누군데?” “몰라 우리 며느리가

        아침마다 사진 펴놓고 아버님 아버님 하는 거 보니까 우리 사돈 영감인 모양이라.”(웃음~)

        대구 오니까 그날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할머니들 생각이 나네요. 계속 이렇게 재미있을 거는 아닙니다.(웃음~) 여러분들은 어떤 심정으로

        절에를 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절에를 갈 때는 인생 정비소를 가는 심정으로 절에 갑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참으로 복 받은 분들이신게 이 시간 몸이 아파서 중환자실에 계신 다른 분들의 시각에서

        보면 건강한 모습으로 부처님 앞에 이렇게 모여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도 큰 복 받으신 겁니다. 또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라서 못 오신 분들에 비해서도  여러분들 굉장히 복 받으신 분들 이구요.

         허나 좀  마음 아픈 거는 알고 뭐 다 좋은데 날도 춥고 귀찮아서 안 오신 분..(웃음~) 그 모든 분들에 비해서

        여러분들은 복 받으신 분들입니다. 절에 오면 삼배를 하고 예를 모시고 불경 공부도 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대부분 절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엎드려 가지고 우리 아들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우리 남편

        출세하게 해 주세요. 우리 시어머니 건강하게 해주세요.... 주문 사항이 많잖아요. 그죠? 제가 이제

        부처님이라고 가정을 합시다. 그러면 오늘 수백 명 신도님들이 계시는데 오는 사람마다 한가지 씩 부탁을

        하면 부처님이 아무리 기억력이 좋으신 분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 외울 수 없을 것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안합니다. 와서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몰라서 못 오고

        길이 멀어서도 못 오고 바빠서도 못 오고 못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여기까지 온 게 얼마나 복 받은

        겁니까. 감사합니다. 그러고 착 내려갑니다. 여러분들은 그래 너 잘났다 그러실런지 모르지만 그런데 이제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내려가다가 “그런데 부처님 있잖아요. 워낙 부탁을 많이 받으셨겠지만 혹시

        조금이라도 시간 있으시면~~”(웃음~) 그렇게 할 요량을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백팔배하고 삼천배

        하고 하는 대로 복 받는다 그러면 직장에 다닐 필요 없잖아요. 계속 와서 절만 하면 되죠. 절은 어느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제가 공감을 했는데 은 이렇게 나를 계속 갖다 쏟는 거랍니다. 오늘 백팔배 하셨죠?

        그러면 백 여덟 번을 나를 쏟어 비운거야. 계속.. 지금 여러분들은 텅 비어 있을 거예요. 무아 상태일

        겁니다. 그야말로... 백팔번을 쏟아 부었으니까..부으러 가는 거지 여기다 채우러 가는 거는 아니다..

        전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박수~) 절에 와서 절을 하고 인생의 정비소라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삼배를 하고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나를 자동차라고 가정을 했을 때 내 차에 차고 있는 내 아내 내 자식들

        모두가 내가 운전하는 내 차를 타고 편안하게 왔는지,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

        알고 지금 내 차에 타고

        있는지, 내가 운전하는 게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어디론가 동행하고 있는 것인지

        이걸 혼자 계속 생각을 해 봐요. 지난주에 왔다면 이번 주까지 일주일 동안에 내가 과연 온전한 운전수

        노릇을 했는지를 생각을 해보는 곳이 여기다. 잠시 나라는 사람의 삶을 이 자리에 멈춰놓고 혹은 나라는

        자동차가 막 바삐 달리다보니까 경쟁시대 아닙니까? 막 달리다보면.. 혹시 다른 차를 앞지르기를 해서

        깜짝 놀라게 한 적은 없는지 또 차를 열심히 앞만 보고 운전을 하는데 뒤에서 나사가 떨어져서 기름이

        새고 있는 걸 전혀 모르는 채 온건 아닌지 차를 세워 놓고 차를 이렇게 둘러 보는 곳이 절집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가서 오랜만에 큰스님 모시고 좋은 말씀도 듣고 다른 신도님들 하고 마주 앉아서

        정말 모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의 대화.. 돈 버는 얘기도 아니고 출세하는 얘기도 아니고.. 그죠?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우리 불자님들 끼리 나눌 수 있는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곳.. 그런 곳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다닙니다. 어느 절에 갔더니 아주 노보살님이 오셨더래요. 젊으셨을 적에 열심히 사셔서

        재산을 꽤 많이 모으신 노보살님이 어느 시기에 다니던 절에다가 전 재산을 전부다 보시를 하고 죽을

        날까지 내가 기도를 하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고 이제 정진에 들어간 거예요.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데

        어느 날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가 됐더라는 거예요. 늙었으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또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어느 날 척추에 이상이 와서 곱추가 되더라는 거예요. 또 열심히 열심히 더욱더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안맹이 오더라. 장님이 되더라는 거예요. 그제사 이제 하도 이상하니까 큰스님께 여쭤봤대요.

                

                                    


        내가 모든 재산을 다 바치고 정말 일구월심으로 열심히 불심을 닦는데 나한테 왜 이런 불행이 계속

        겹치느냐? 그랬더니 큰스님께서 무릎을 탁 치면서 “보살님 이제 부처님께서 보살님을 깨우치시기 시작을

        한 겁니다. 보살님 사실 세상이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부처님 밑에 자식이 다리 못 쓰는 사람이고, 그 다음 손이 허리 못 쓰는 사람이고, 그 다음 고손주가

        눈 못 쓰는 사람이고 이럴 것을 보살님이 지금 다 거두는 중입니다. 이걸 다 가지고 이젠 떠나실 참인

        겁니다.” 그 큰스님 말씀에 감동을 해서 정말 돌아가실 때까지 열심히 기도를 하고 편안하게 떠나셨다는

        그런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나요. 사사불공(事事佛供)이면 처처불생(處處佛生)이란 말이 있듯이 약심을

        기울이면 뜻이 이루어진다. 당장에 내게 불어 닥친 불행이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고 모든 업보를 다 날더러

        미고 가라는 군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도 그 말에 깊이 공감을 했어요.

        요즘 세월이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지금 여러분들께서 우연히 그죠. 절에 오시기 편안한 옷으로 골라 입고

        오셨겠지만 옛날 같으면 명절에나 입을 옷입니다 이게..그렇잖아요. 요새는 패션의 시대이기 때문에 질긴 거,

        오래 가는 거, 이런 거 말고 이쁘고 고운 거 그런 거를 심미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절도 옛날

        그 구중궁궐 그야말로 산속에 있던 때에서부터 지금 생활 현장으로 이렇게 나와서 포교당을 겸하는 이런

        세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어느 보살님이 열심히 절에 다니시는데 집에 있는 거사님은 바쁘다는 핑계로 절에

        가자 그러면 그렇게 안 가더래요. 그래서 어느 날 열심히 꼬셔 가지고 이제 드디어 절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절에 와서 막 부처님을 모시고 한 석 달째쯤 되고 나니까 그 거사님이 주지 스님한테 그러더래요. 저는

        이만큼만 댕기고 안 댕기겠습니다.(웃음~)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절에 다니니까 전날 새우젓도 먹지 말라

        그래, 마누라 옆에도 오지 말라 그래...귀찮은 게 하도 많으니까 난 석 달 다닌 걸로 반가이 해 주세요

        그랬대요. 그러니까 그 스님이 새우젓도 먹고 마나님 옆에도 가고 할 거 다하고 절에 오면 안 오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래 인제 우리 포교당은 시중에 이렇게 생활 가까이에 와 있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교회 가자고 난리를 치는데 우리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어느 절에 댕기세요.” 그러면 “예 그냥

        어느 절에 댕깁니다” 그러면 “아 그러시군요. 나무 관세음보살” 그러고 포교에 좀 피동적인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모두 점잖아서 그렇죠. 그죠?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불 켜는 불교고 저기는

        들어가자마자 찍어 바르는 물교니까 틀리기는 하지.. 어쨌든 우리는 건국 이래 50년 동안 한 번도 외침이나

        내란을 겪지 않은 요순시대를 지금 살아가고 있다 그럽니다. 이전에는 뭐 무슨 헬로우도 왔다가 왜놈도

        왔다가 때놈도 왔다가 로스케도 왔다가 오만 것들이 다 왔다갔다 해가지고 우리가 순수 혈통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좀 찔리는 대목이 없잖아 있다 그래요. 요새는 우리 나름으로 세계적인 게 한 이백 가지가

        된다 그러잖아요. 세계 일등 하는 것만.. 무슨 조선, IT이런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렇겠지만 하여튼

        우리나라가 한반도가 미국의 텍사스 주의 이십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입니다. 미국으로 말하면

        일개 면도 안 되는 정도인데 이걸 가지고 세계적인 걸 다하잖아요. 월드컵, 올림픽, 여수 박람회,

        대구 세계 육상대회, 강원도에서 하는 동계 올림픽 이걸 다를 아우르는 나라가 세계 5대국 왔다 갔다 해요.

        쬐그만 나라가.. 올림픽에서 지금까지 1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요. 세계적인 선수가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스포츠 강국이에요. 쬐끄만 나라인데.. 반 토막 가지고 미국이라든지 중국이라든지

        영토 넓고 선진국이라는 모든 나라들에 비해서 우리는 계속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거예요. 골프는 박세리,

        볼 잘 차는 박지성, 야구 잘 하는 박찬호.. 다 박가냐. 어떻게 된게.(웃음~) 박씨만 손들어 보세요.

        



        좋으시겠습니다. 우리 이가도 있어요. 야구 잘하는 이승협... 김가도 있잖아요. 김연아..그거 팽 돌아가지고

        떨어지는 거 한 번에 국가 브랜드 가치를 육 천억씩 올린다 그래요. 쬐그만 나라이기도 하지만 캐낼만한

        자원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 지금 제일 많이 캐는 게 석탄인데 석탄이 에너지 중에는 제일 싼 거고..

        지금 우리가 귀히 여기질 못해서 후회하는 대목 중에 하나가 물입니다. 물 하면은 물 쓰듯이 쓰던 나라인데

        지금 물 부족 국가가 되었어요. 물을 한 병을 마시려면 생수를 마시려면 콜라나 맥주 값보다 더 주고

        마셔야 돼요. 무슨 얘기냐 하면 일본도 우리나라 하고 비슷하게 산업화 과정에서 물 구멍을 오만 구멍을

        다 뚫어서 빼서 쓰긴 썼는데 뒷감당을 못해 가지고 마무리를 제대로 못해 가지고 엉망이 된 거예요.

        오수가 다 밑으로 내려 들어 간거를 뚜껑을 전부 해서 단속을 잘했으면 밑이 다 살아 있을 텐데 열어 둔

        채로 그냥 방치해두는 바람에 더러운 물이 들어가서 밑이 다 썩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또 동작 빠른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 일본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해저심층수라 그래서 저 밑에 있는

        바다 밑에 있는 물을 기름 빼듯이 빼가지고 이걸 음용수로 걸러서 내다 파는 거예요. 이걸 한국에다가

        오백 원짜리 패트병 한 개를 오천 원씩에 미네랄이 많대나 뭔 이래가지고 이거를 압구정동에다 주로 많이

        팔았답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요소가 물이다 보니까 물이 중하죠. 압구정동 아줌마들이

        이거를 오천원씩에 주고 사다가 먹었다 그래요. 그 아줌마들 내가 몇 살까지 사는지 내가 볼라 그래요.(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봤다 그러면 바로 하잖아요. 저 강원도 고성에서 바다에 나가서 빼서 딱 보니까

        미네랄 함량이 일본 거에 두 배라.. 그래 가지고 이거를 시제품을 내놨는데 일본 거에 딱 절반인

        이천오백원씩에 지금 내놨어요. 고성군 사업이 아니라 강원도 사업으로 지금 확대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럽니다. 우리가 물이라는 것을 요만한 패트병 한 개를 이천오백원에 사다 먹을 시절이 된 거예요.

        우리가 물 관리를 참 잘해야 되는데 두고두고 ..언젠가 방송에서 한번 얘기했던 거 뭐냐? 어린애가

         “엄마 물 한잔만 실컷 먹었으면 좋겠어.” 그럴 날이 가상의 세계뿐만이 아닐 거다. 목욕탕 가보세요

        요새도.. 이걸 틀어놓고 치카치카 하는 사람 보면 이걸 좀 잠그고 하면 좋겠는데.. 이걸 열어놓은 채로

        양치질 하는 사람 보면 집에서도 저럴까? 에너지는 한정 없이 우리들 곁에 늘 같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특히 물 관리를 통해서 자꾸 인식을 시켜 나가야 돼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우리 불자님들은 오늘부터 물에 관한 한 모두가 다 파수꾼이 되어 주셔야 됩니다. 요즘은 세월을 자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인적 자원의 나라라는 것을 인식을 해서 우리 모두가 다 내가 이 나라를 지켜

        나가는 자원의 하나다. 고로 한번 쓰고 폐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나를 재활용할 샘을 치자.

        어떡하면 나라는 사람을 두 번 쓸 수 있을까? 인생을 일모작만 하지 말고 이모작 삼모작 다모작을 하는

        그런 구상을 한번 오늘 이 법당에서 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부처님의 특별한 가피를 받은

        복 받은 분들이니까 훨씬 더 많은 분들에게 그런 것들을 전파할 용의가 있는 분들이므로 더더욱 귀한

        인적자원 일런지 모릅니다. 일모작 인생 일모작..지금까지는 한 가지를 일구월심으로 해서 우리가 전문성을

        재고를 시켜서 이만큼의 대한민국을 이뤄낸 겁니다. 일모작의 특징은 무엇이냐? 어차피 부가가치 중심이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항상 문제시가 된 것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게 뭐냐 하면 학교 전공하고 실제 본인이

        하는 것 하고 전혀 다른 것.. 제가 홍익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을 했어요. 사진을 부전공으로 했어요.

        그런데 제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대학 나오자마자 바로 신문 기자를 했어요.




        신문기자를 한다면 신문방송학과를 다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나와서 방송MC일을 하고

        요즘은 사진쟁이가 되어서 사진 찍으러 다녀요. 이제사 제가 하고 싶은 걸로 본궤도로 돌아온 건데

        저는 굉장한 행운아입니다. 사진을 이제라도 할 수 있을려면 우선 그 감성이 살아 있어야 되고 여건이

        갖춰져 있어야 돼요. 그거 팔자 좋게 이렇게 메고 다니는 것 같지만 돈 푼이나 듭니다. 그리고 건강이

        뒷받침이 돼야 되잖아요.

        이 세 가지 요건이 다 갖춰져서 지금이라도 아이들 때 꼭 하고 싶었던 여한을 푸는 차원에서 사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해피한 일입니다. 저는 이제 인생 이모작을 시작을 했어요. 신문 기자가 되기

        이전에는 미술 대학을 다녔고 그때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게 그 나름에 어린 저의 꿈이었겠죠.

        그 이전에 사실 제가 웅변을 했어요, 웅변을 하게 된 게 참 재미있어요. 제가 사실은 칠남매 중에 장남입니다.

        어깨가 무겁죠. 사실은 9남매인데 우리 어머니가 챙피시럽다고 칠남매로 하라 그래서 지금 칠남매로

        하지요.(웃음~) 숫자는 맞는 게 저 위에 형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어렸을 적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고 저 밑에 여동생이 있는데 제가 사실 황해도 출신이거든요. 6.25때 내려오는 과정에 저보다 두 살

        아래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향에서 6.25가 이렇게 길어질거라는 건 상상을 못하셔서 둘 다 데리고

        다니느니 하나는 놓고 가라.. 저는 걸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걔는 업혀 다녔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는

        두고 가라.. 그러는 바람에 두고 온 게 지금 오십년 째 못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칠남매가 맞긴 맞죠?

        제가 운명적인 장남이 됐어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중에서도 키도 쬐끄만 하고 눈도 작고 전부 쬐끄만

        하다 보니까 항상 둘째 줄에 앉아요. 그러면 선생님이 아는 사람 손들어 그러면 간댕이도 쪼그만해서

        손을 크게 못 들고 항상..알기는 아는데.. “너” 그러면  일어나는 게 감당이 안 되어서 맨 날 .. 변변치

        못하니까 아버지가 늘 걱정을 하셨어요. 사내 녀석이 어딜 가서 의중에 있는 얘기는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되는데 쟤는 장남으로서 앞으로 그 대임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참 한심하다. 그런 마음을 늘

        가지셨는데 우리는 그래도 아버지가 농협에 다니시고 은행을 다니셨기 때문에 서울에다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어요. 이북에서 내려온 다수 우리 친척들은 멀리 이렇게 퍼져 있었어요. 지역에 있다가 학교 진학을

        시킬 때 쯤 되면 우리 집에다 얹혀서 학교를 보내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 밑에서 커나간 사람이 한 20명 돼요.

        우리 어머니가 85세인데도 정정하신 거는 그때 다 덕을 쌓아 놓으신 그래서 그러시지 않을까? 그때

        도시락을 열 몇 개씩 싸고 그 새벽에 일어나서 마포에 살 때 당인리 발전소로 빨래를 다니려면 옛날

        고무장갑도 없을 때 그냥 맨손으로 빨래 방맹이 이고 그걸 빨아가지고 맨손으로 올 정도면 손이 쩍쩍

        찢어져 가지고 피가 줄줄 나고 .... 그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우리 어린 시절을 다 감당을 하신 분이래서

        지금 그 복을 늘그막에 누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째든 우리 집을 거쳐 갔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경희대학교에서 정치 외교학을 공부하던 조카가 있었어요. 제가 중학생인데 그이는 대학생이니까

        변변치 못한 게 족보는 높아 가지고 지가 아저씨예요.(웃음~) 그이가 조카라.. 아버지가

        “너 잘 왔다. 애 좀 어떻게 너처럼 웅변 선수는 아니더라도 애 입은 좀 띠게 네가 좀 어떻게 해 봐라”

        그러니까 그 조카가 밥 얻어먹는 죄로 “아저씨 그러면 저하고 웅변을 공부합시다. 우선 원고를 두 개만

        쓰십시오.” 그래 쓴 게 때려잡자 김일성. 자나 깨나 불조심이예요. 그땐 그거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걸 외워

        가지고 와우산 뒤에 가서 그 사람은 진짜 얼굴도 잘 생겼고 아주 목소리도 좋고 웅변가로서는 아주

        동네 처녀들의 흠모를 한 몸에 누린 수준..






        저는 그게 안 되니까 어정쩡하니까 조카를 따라는 가는데

        그 정상에서는 못하고 저 밑에 내려 가면은 소나무 숲이 이렇게 거긴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데라.

        그 안으로 속 들어가서 그 안에서 여러분 여러분 이러다가 누가 지나가는 것 같으면.... 여기서 거기가

        불과 한 20M밖에 안되는데 여기서 거기 가는 데 한 이삼년 걸렸나 봐요. 나중에 가서 하니까 되더라구요.

        그게.. 그래 가지고 이제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갔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까 교장 선생님이 진학지도..

        한사람씩 이제 면담을 하는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저더러 “너 어느 학교?” “네 연세대학교 정외과입니다.”

        우리 웅변 담당 선생님이 연세대학교 정외과 출신이셨거든요. 그 분이 우리들한테 영웅이었어요.

        저 선생님의 뒤를 따르리라. 맨 날 이랬는데 교장 선생님이 딱 보더니 칠남매 중에 장남, 이북 출신,

        아버지 월급쟁이.. “안 돼. 임마. 너는 대학교 끝나자마자 아버지 뒤따라서 얼른 취직해서 네 동생들

        건사해야 돼. 웅변 말고 잘하는 거 한 개만 더 생각해 봐.” 졸지에 진로가 바뀌는 거예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림을 좀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랬더니 “그래. 홍대 디자인.. 이건 백 프로 취직이니까 너 이거

        해. 너 미술 선생한테 가” “알겠습니다.” “미술 선생님 교장 선생님 보내서 왔습니다.”그랬어요.

        “야 미술부 애들은 이거 중학교 때부터 하던 애들이야. 너는 일 년 다녀놓고 홍대 디자인 좋아하네.”

        “어떻게 합니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학원을 동시에 두 개 다니는 거다.” “학교에 회비를 못 내서

        맨날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인데 무슨 학원을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를 어떻게 다닙니까?” “어쩔 수 없다.

        네가 그러면 자력으로 어떻게 해보렴.” 이렇게 된 거예요. 그날서부터 애들 다 집에 간 연후에 이넘 것도

        보고 한번 그려보고 이넘 것도 그려보고 추운 겨울이 되면 미술부에 있는 요만한 의자 전부 쪼개서 불 때서

        밤새도록 그리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석고 이렇게 해놓고 뎃생을 하는데 옆에 촛불을 켜놓으면 진짜

        무슨 법당에 온 마냥 열심히 그렸어요. 우리 모교에서 전부 여덟 명이 갔어요. 미술부 애들 일곱 명,

        웅변부 이상벽이 하나.. 여덟 명이 갔는데 얼마나 제가 운이 좋은 놈인가 하면 미술부 애들 일곱 명 싹

        떨어지고 이상벽이 하나 붙었다는 거 아닙니까.(박수~) 그래 들어갔어요. 들어갔더니 그 다음에 아버지가

        “너는 이제 취직은 백 프로 된다니까 세상 공부를 겸해서 기자를 한번 해보는 건 어떠냐?” 그래서 “그걸 또

        아무나 합니까? 왜 이러십니까?” 모집 광고를 가지고 왔어요. 경향신문에서 문화부 기자 두 명을 뽑는다는

        거를 갖고 왔어요. 한번 해 보라는 거예요. 취직 걱정은 할 거 없으니까 해 보라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갔다 했어요. 갔더니 한 삼백 명이 왔어요. 그중에서 일단 열 명을 추린다는 거예요. 필기 고사에서..

        열 명에는 들었어요. 나중에 면접 고사를 보는데 이리로 들어 왔다가 저리로 나가니까 앞에 놈이 뭘 했는지

        알 수가 있나. 저 차례가 되어서 들어갔어요. 사장 뭐 편집국장, 취재 부장 쫙 앉아 있는데 어떤 분이 불쑥

        “야 너 지금 여기 취직 했다고 치고 신문 기자가 됐다. 오늘 나가서 뭘 해갖고 올수 있을지 얘기 해봐 ”

        신문기자가 뭔지도 모르는데 오늘 나가서 당장 뭘 해 갖고 올게 있습니까. 그때 웅변을 했던 내공이 딱

        나오는 거예요. “앞으로 문화 예술은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을 것이 예상이 되면서~~”

        그 물어본 사람이 그만 그럴 때까지 했으니까 한 5분은 한 거 같애요. 뭐라고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도 안나요.

        됐으니까 이제 나가래요. 됐다는 건지 떨어졌다는 건지.. 한 일주일쯤 있으니까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됐으니까 출근을 하라고.. 그래서 들어갔어요. 취재부장님이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문화부장님이 너는

        사장하고 어떻게 되느냐 이거야. “전혀 모르는 분인데 왜요?” 그랬더니 “너는 사장이 붙였다” 그래요.

        “어떻게 붙였는데요?” 그러니까 사장이 면접고사 끝나고 싹 나가면서 심사위원들한테 “오늘 열 명 본 놈들

        중에서 말이야 아까 떠들던 놈 있지. 그 놈은 하나 붙여보지.” 그러고 나갔대요. 그러니까 아주 인상 깊은

        면접고사를 본 거예요. 제가.. 딱 붙었는데 신문사를 들어가고 나니까 한 5년째 됐는데 그때가 유신시대입니다.

        무섭던 시대예요. 쓰고 싶은 걸 못쓰던 시대입니다. 함부로 썼다간 그냥 현장에서 잡아가고 그럴 때인데

        우리 문화부야 뭐 그런 거 없지마는..그런데 이게 갈 길이 이게 아니라는 걸 자꾸 느끼게 되더라구요.

        그만 두겠다 그랬더니 우리 문화부장이 “이 놈아 너 어디 가서 십년은 했어야 기자했다고 그래. 너 어디

        갈 건데?” “방송국이요.” “방송국 갈려면 여기서 십년은 문장 구성 능력이라던가 단어 선택 능력이라던가

        이것만 네가 십년만 하면 저기 가면 일당백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예”  십년 되는 날 제가

        나왔어요.(웃음~~) 그래가지고 방송국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누가 써 줍니까. 임성훈 원고도 써 주고

        허참 원고도 써 주고 쓰는 건 되니까 그런 거 하다가 어느 날 딱 제게 프로그램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게 주부가요열창이라던가, TV는 사랑을 싣고, 신혼은 아름다워 그러다가 이제 아침마당만 13년을 했다나.

        나중에 나오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대요. 그래서 거기서 저 나름대로 방송대상을 받고 뭐 이렇게

        방송쟁이로서 정상까지 제가 체험을 한 사람이고 왜 돌아서 나왔느냐? 어느 날 책을 보고 이렇게 우리는

        항상 깊은 지식보다 넓은 상식으로 살던 사람이다 보니까 남 얘기도 유심히 들어야 되고 틈틈이 책도

        읽어야 되고.. 어느 날 이형기 시인의 시중에서 낙화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중에 <때를 알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언제가 내가 돌아설 때인가를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그때가 마침

        방송대상을 받았을 때이니까 어깨가 이만큼 울라가 있을 때인데 그래 이쯤이 좋겠다. 사십 년째 되는 해

        접자. 딱.. 그때 우리 딸이 벌써 방송국에 들어와 있을 때고. 둘이 같이 출근할 때는 신나서 다녔는데

        애가 말은 안 해도 아버지 이제 고만 하시지요구나. 바톤터치 할 때가 됐다는 거구나. 그래서 제가

        방송국에 가서 그만 두겠다고 그랬더니 왜 그러느냐고? PD가 마음에 안 드느냐? 출연료를 더 드릴까요.

        그거 아니라고..왜 그러느냐고? 사진 찍으러 나간다고. 말이 되냐고..저는 죽으면 죽었지 그거 하고 싶다고..

        그러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때 잘 그만 둔 게 그때 안 그만 뒀으면 이번에 짤렸지. 경제 불황 뭐 이래가지고

        머시기도 집에 가고 머시기도 집에 가고.. 다 집에 갔잖아요. 다 짤렸잖아요. 그러면 그걸 삭일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어요. 삭이고 난 연후에 카메라를 든다면 들까.. 저는 아침마당이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바로 카메라를 들고 바로 현장으로 뛰었어요. 그리고서 개인전을 두 번 열고 LA하고 뉴욕하고

        해외전을 두 번 열고 에세이집을 내고.. 하여튼 남들 한 이십년 하던 걸 다 해버렸어요. 그게 뭐냐?

        저한테는 인생 이모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이 지족상락(知足常樂)이라. 지족..본인이 만족케 생각하는

        사람은  상락..언제나 즐겁다. 저도 모르게 아침마당을 할 때는 평생을 아침 6시에 일어나던 사람인데

        카메라를 들고 부터는 5시에 눈이 떠지는 거예요. 방송도 저한테는 팔자소관으로 잘 어울리는 직업 중에

        하나였지마는 사진이 저한테는 더 큰 소망의 장이었다고나 할까요. 카메라를 탁 메니까 날개 단 사람처럼

        날라 다니는 거예요. 하루 일 만km 이 만 km를 거의 날라 다니는 수준으로 했어요. 여기까지 얘기를 하면

        혹자들 중에는 당신 참 재주가 많아서 좋겠수. 디자인도 하고 신문쟁이도 하고 방송쟁이도 하고 사진쟁이도

        하고 온갖 쟁이는 다 하는구려. 이 대목이 중요해요. 오신 여러분들이 이제 공감해야 될 대목 중에 하나인데

        이전 일모작에 올인을 하다보면 뭔가 또 다른 게 있었는데 그걸 돌볼 새가 없어서 그게 소멸 되었거나

        알기는 알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건사를 못해서 그 대목이 녹슬어 버렸거나 아마도 그럴 거예요.

        아까 이상벽이 택도 없이 웅변을 해서 진로를 그쪽일 뻔 했던 거를 견주어 보더라도 웅변이라고는 저하고는

        택도 없는 대목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웅변반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상도 타고 종래에는

        그쪽이 진로가 될 만큼 내안에 그런 구술 능력이 내장되었구나 하는 것을 뒤늦게 알았듯이 여러분들도 가까이

        있는 사람은 잘 몰라요. 친구라든가 약간 제3자적 시각에서 보면 여러 분들이 지금 일모작에서 한 것

        말고도 뭔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 되게 웃긴다 애들이

        그래요. 사람 웃기기 쉽지 않아요. 그냥 우리 엄마는 웃기는 사람 그래서 좌시해서 그렇지 이 삭막한 세상에

        그분이 그 소질을 제대로만 발현을 했다면 분위기 메이커로서 정말 애간다 재간다는 사람 됐을 거 아닙니까?

        우리 아버지가 말은 잘해. 말 잘하기 쉽지 않아요. 이상벽처럼 방송국 다니는 사람, 국회의원 하는 사람,

        변호사 하는 사람, 무슨 학교 선생님 하는 사람, 약장수 하는 사람, 모두가 다 말 잘해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냥 우리 아버지가 말은 잘해 그러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묻어 두었기 때문에 그것이 제대로

        발현이 안 되었을 것이다. 요새 전문화시대이다 보니까 한 가지 일에 모두 올인을 해야 그 사회에서

        제일가는 건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단한 나라인게 쇠 한 조각 안 나는 나라에서

        조선업으로 일등을 하잖아요. 이거 쇠를 녹여서 배를 만들잖아요. 외국에서 쇳가루를 들여다가 요즘

        녹여 가지고 배를 만들어서 되파는 걸로 세계일등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인겁니다. 제가 한번 재작년에 

        미국 뉴욕에 갔을 때인데 가전제품 파는 데를 카메라 렌즈를 바꿀라고 갔어요. 옛날 같으면 우리 같은 사람

        들어가면 일본에서 왔느냐? 중국에서 왔느냐? 이렇게 물어봐요. 그런데 바로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이상벽이를 아나? 헬로우인데...그래서 한국에서 왔다 그랬더니 이만한 큰 TV를 보여주면서 이게

        Made in Korea인데 화질이나 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제품이라고 우리가 요새 이거

        가지고 밥 먹고 산다고 열변을 토하는 거예요. 아..우리가 IT강국이라고 말만 들었지 실제 소비지들 하고

        만나는 현장에서 이렇게 각광을 받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러더니 그 사람이 뉴스라고 이야기

        해주는 게 뭐냐 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을 하면서 백악관 안에 있는 가전제품을

        Made in Korea로 싹 다 바꿨다 그래요.(박수~~) 이전에 Natinal, Sony 이런 건 다 제치고  Made in Korea가

        컴퓨터가 됐던 거기 뭐 TV가 됐던 세탁기가 됐던 모든 가전제품을 Made in Korea로 개비를 했다는 거예요.

        거기가 어딥니까? 거기를 쳐들어갔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스포츠 스타들이 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일등을 하고 그러는 것처럼 이제는 제품을 가지고도 전 세계를 아우르는 요번에 삼성이

        가전제품 판매에서 세계일등을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자동차 같은 거 보세요. 쬐끄만 나라에서 만들어

        가지고 미국 시장을 계속 위협하고 있잖아요. 이런 정도 그 전후에 그 잿더미 위에서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발전한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나라도 없다는 거예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거예요.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그 한 가지 일에 전문성을 발휘하는 일정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그 다음 이거 아닌 다른 거를

        생각하는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대부분 이제 일모작을 완성을 한 연후에 지금 부처님 앞에서

        이모작을 함께 협의하는 시간들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내가 무슨 이 나이에 무슨 이모작을..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렇지가 않아요.

        제가 올해 꼭 마흔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만(웃음~) 웃깁니까? 속인다구요? 그게 아니고 제 친구 중에

        배우 염정아씨 아버지가 있어요. 염정아씨 아버지 되는 분이 제 친구인데 염정아가 시집을 잘 가서 종합병원

        원장님하고 결혼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친구가 사위 자랑을 하고 싶으니까 우리 친구들 만나기만 하면

        종합 검진 받으라고..내가 무조건 반으로 깍아줄 테니까 가서 받으라고.. 저는 챙피스럽게도 한 번도 그

        종합검진을 받아 본적이 없어요. 머리 아직 물 안들이고 안경 아직 안 끼고 이빨 말짱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병원에 가서 그걸 째가지고 들여다보더니 걸레입니다 그러면 뭐가 좋을 게 있어요. 그러니깐

        참을 수 있는 한 그냥 가만히 이러고 다니는 거고 문제가 약간 예상이 되면 그때 갈라는 거예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하나씩 하나씩 이렇게 정리정돈이 된다 그럽니다만 왜 나이가 들면 잘 안 보이느냐? 나이가

        꽉 드시는 분이 이 꼴 저 꼴을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 왜 안 들리느냐? 내가 안 들어도 될 말인가 보지..

        하고 그냥 지나 가라는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머리가 하얀 분은 머리가 왜 하얀가?

        요새 젊은 애들이 모두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노인 양반을 못 알아본다는 거예요. 머리가 하얀색이면 멀리서

        봐도 금새 이렇게 되겠금 그래서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 놓은 거라 하거든요. 그러니까 물들이지 마세요.

        애들이 인사를 안 해요. 어쨌든 그 친구가 자꾸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고 지랄지랄을(웃음~) 해서

        할 수없이 거기 갔어요. 가서 이제 주요 부위만 봐라. 다른 건 내가 봐도 멀쩡멀쩡 하니까 그냥 가자.

        그 병원 원장이 쭉 체크를 하더니 결과를 사흘 후에 가르쳐 준대요. 사흘 동안 이게 뭐 밥맛이 나나

        잠이 오나 뭐가 하나 걸리긴 걸렸을 텐데. 위장일까 간장일까? 뭐 또 째자는 건 아닐까? 만약에 째게 되면

        애들에게 뭐라고 얘길 해야 되나?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사흘쯤 후에 전화가 왔어요. 지금 의학상 이선생의

        나이는 마흔 일곱 살이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다음부터는 주민등록 번호를 잊어버렸어요. 어디 가든지

        몇 살이냐고 그러면 마흔일곱 살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원장이 중요한 얘기를 했어요. 저한테.. 마흔일곱살은

        좋은데 너무 교만해 가지고 이러다가는 한해에 두 살도 먹고 세 살도 먹고 조심하라고 그랬어요. 제가

        십년까지만 마흔 일곱 살로 살기로 했어요. 여러분의 나이는 동사무소에 기록해놓은 거는 기록해 놓은 거고

        실제 나이는 병원에 있는 의사가 정해 주는 거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같이

        앉으신 것만 해도 여러분들은 쉰 살 넘은 분이 없어요. 저쪽에 머리 하얀 보살님 저보다 두 살은 위같이

        보이시네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라는 인적 자원을 한번만 써먹고 폐기 처분하기는 너무 아깝다. 우리라는

        자원을 이모작을 통해서 재활용을 도모해보자. 그 건강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고 재주가 발견되는데도 그걸

        안하고 떠밀려 가면 그건 인생을 직무유기 하는 거다.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건 직무유기 아닙니까? 절에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찮아서 뭐..이건 다 직무유기 하는 거예요. 갈 수 있는데 단지 귀찮아서 안가는

        건 직무유기다 그런 말씀입니다. 오셔서 모두 합장하고 큰스님 말씀 듣고 깨우치고 깨우침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그러는 데가 여기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큰 가피를 주셨으면 그것을 여한이 없는..

        한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남한테 끼치는 원한이 있고 내게 남는 여한이 있다 그래요. 여한을 다 풀고 가기에는

        글쎄요..우리 욕심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풀가동해서 인적자원으로서의 구실을

        충실히 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이는 쉰 살로 규정이 되었으니까 뭘 할런지 규정만

        지으면 되지 그죠. 뭘 할까만 생각하면 돼요. 가지고 있는 내재된 재능도 재능이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도

        모두 다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고 하듯이 그 나름대로 다 짝이 있고 인연이 있고 연분이

        있다 그러잖아요. 그 보살님은 아주 김지미처럼 이쁘게 생겼는데 옆에 남편 되시는 분은 우리 마냥

        오종종 해가지고 댕기면 이제 남들이 그러잖아요. “보살님은 어떻게 신수가 그렇게 좋으신 양반이 어떻게

        남편은 저렇게 오종종한 분을 만났어요?.” 그러면 보살님께서 뭐라 그래요?

        “모르는 말씀하지 마세요. 우리 남편 매력은 나만 안 다우.”

        그럼요. 사실 진짜 매력은 감추어진데 있다는 거예요. 이 얼굴을 우리가 꼴이라 그러잖아요.

        꼴이 다 다르잖아요. 겉으로 드러난 꼴.. 내재되어 있는 매력 말고 꼴이 좀 이쁜 사람은

        꼭 꼴값을 하거든.(웃음~) 뭘 먹어도 차린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막 먹고 이러면 되는데 깨작깨작~~

·       이쁘기 땜에.. 누가 뭐라 그러면 화들짝 흰니를 드러내고 웃어야 웃는 것 같고 말하는 사람도 신나고

        그러는데 누가 좀 재미난 얘기하면 호호~~(웃음~) 우리 방실이 말따나 이쁜 애들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싹 잡아 갔으면 좋겠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겉모양도 부처님이 다 다르게 만들어 놨잖아요.

        똑같이 만들어놨으면 이 세상 대개 재미없을 거예요 그죠? 이쁜 사람은 자부심을 가지고 못난 사람은

        그쪽을 부러워하면서 또 이쁜 사람은 못난 사람들을 약간씩 비웃어 가면서 서로 그렇게 더불어 사는 거

        아니에요. 우리 저 유행가 부르는 사람 중에 우리가 못생겼다고 생각되는 두 사람만 말해봅시다.

        우리가 요새 젊은 사람들은 무슨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 무슨 이름도 성도 없고 비, 무슨 몽키 이름이 이래.

        우리가 남자 가수 중에서 노래는 좀 하는 것 같은데 인물은 좀 그렇다 그런 사람 누가 있어요?

        조영남..본인은 좀 찜찜하게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그렇게 내놓을 인물은 아니지요. 그 사람이 앞으로 보면

        그 답지 않아요. 안경을 껴가지고.. 그런데 옆으로 돌면 코가 없거든. 카메라가 옆으로만 돌아오면

        난리...조영남..그 다음은? 나훈아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나훈아는 저하고는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니까. 나훈아는 맨날 그래요. 내가 얼굴이 소도둑놈같이 생겼거든.(웃음~)지가 그러니까..

        연말에 어느 호텔에서 디너쇼를 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공연엘 갔는데 공연이 근사하게 끝났어요.

        앵콜 받고 구슬땀을 흘리고.. 끝나고 우리끼리 근처 어디 가서 속닥하게 뒷풀이를 하는데 친하니까 객관적인

        관전평을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그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니는 노래할 때 뭐한다고 그래 눈깔을

        뒤비노?” (웃음~) 그래요 아줌마들은 그걸 보고 웃자고 할지 모르지만 남자끼리 보기엔 넉넉하다.

        그러면서 제가 이야기를 했어요. “니는 이빨이 정말 이쁘다” 이빨이가 정말 잘생겼다. 참 건강하게 생겼어요.

        그 이빨이 고른 건 아닌데 조영남의 이빨이 두 사람한테 공통적으로 잘생긴 대목이 그건데 이빨이

        틀니처럼 고와요. 나훈아는 틀니처럼 고르진 않은데 삐뚤삐뚤한데 튼튼해. 그래가지고 나이 먹으면 잇몸이

        튼튼해야 이빨을 부재할 것 아닙니까 그죠? 딱 붙들고 있는데 그 비결이 있더라구요. 우리도 이제 마이크를

        잡는 직업인이다 보니까 그 비결이 궁금하잖아요. 그랬더니 양치질하기 전에 손부터 씻고 요 두 손가락으로

        빠닥빠닥 마사지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잇몸이 튼튼해지면서 이빨을 붙들고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거지.

        뭐 이론상 맞잖아요. 그죠? 그래서 저도 집에 가서 했더니 피가나... 피가 나는데 자꾸 했더니 도움이

        되더라구요. 저도 지금 이빨 상한 데가 없거든요? 하여튼 나이 먹으면 여기저기 다 늘어지고 그러잖아요?

        다 비벼나야 돼.(웃음~) 그러니까 이빨을 살려 놓는다 이거야. 그래서 내가 조영남 이든지 이빨을 칭찬해

        놨더니 나만 만나면 자기가 잘 생긴 것이 확인이 되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훈아도 그전에는 크아 이러더니 내가 이빨이 이쁘다고 하니까 노래가 달라졌어요 . 무슨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웃음~) 그거 내가 얘기해준 다음부터 그러대요..(웃음~) 노래하나는 참 팔자소관으로 하는

        사람이예요. 어쨌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사람 나름의 숨겨진 재주가 이제 확인이 되고 나면 본능적으로

        자랑하고 싶어지듯이 여러분들도 여러분들 안에 내재 되어있는 또 다른 재주가 있을거라고요. 그걸 찾아내서

        인생 이모작으로 연결을 하면 그 사람 못지않을 것이다.

        제가 쭉 하고나서 사진쟁이 됐다고 그랬더니

        친구들이 그 다음에 또 뭐 있노? 그래서 그 다음엔 제가 색소폰을 불거라고 그랬어요. 이빨이가 말짱하니까.

        그래가지고 뭐 할 건데? 나훈아 공연에 가서 무시로 그 딱 앉아 있다가 따다다다~ 못 할 거 없잖아요.

        친구 콘서트에 가서 요렇게 앉아 있다가 물고 앞으로 나가서 카악~(웃음~) 그 사람들 하도 오래 따라 다녀서

        왠간하면 해요,. 우리 현철씨 그 사람은 항상 소매 끝이 길어. 그래 가지고 서울 생활한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자기이름을 못 대요. 현철이잖아요 그죠? 어디가면 “안녕하십니까? 헌철입니다.”(웃음~)

        저 뒤에 있는 분 아직 안 나간 거  보니까 아직 재미있나 봐요? 그래 내 안에 내재 되어 있는 또 다른 어떤

        것을 찾아내고 개발하려고 하면 비교치를 많이 확보해야 돼요. 본 것도 많고 들은 것도 많고 읽는 것도

        많아야 돼요. 제가 다섯 가지만 권하겠습니다. 다섯 가지 중에서 세 가지만 매월 하십시오.

        이제 하나는 뭐 적을 거 없어요. 나중에 곗날 가서 이야기할라고? 그냥 들으면 되요.

        첫 번째는 남들이 봤다는 영화 한 편은 꼭 보십시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시대의 한 단면입니다. 뭐 해운대라는 영화가 천만을 들었대나 봐. 그러고 말지

        말고 가서 보고 아 !그렇구나. 저 영화에 모두가 감동하는 이유가 뭘까? 저 영화가 이 시대의 사람들과

        어디가 합일일까?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이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 한편도 안보고 남들하고

        무슨 대화를 한다고 마주하고 있을 양이면 한동안 그 사람들 영화 이야기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돼요.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비교치 주변이 돌아가는 세월 물적, 시류 이거는  알고 살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두 번째가 뭐냐면 남들이 보았다는 베스트셀러 한권은 꼭 읽읍시다.

        그의 소설집이 됐던 수필집이 됐던 시집이 됐던지 아니면 우리 여기서 나오는 법보시가 됐던지 뭔가 똑같은

        사안을 남들은 어떤 시각으로 봤는지를 확인하는 활자매체를 한 가지 정도는 정독을 할 수 있어야 된다

        그래요. 신문만 정독해도 대단한 거예요. 신문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배달되는 백과사전이올시다.

        그것만큼 좋은 책이 없어요. 소설도 있고 시사도 있고 만화도 있고 뭐 다 있는 게 사실 신문이고 이만큼씩

        두껍게 배달해줘요. 거죽만 몇 군데 보고 탁 덮어버리지 말고 하여튼 남들이 읽는 베스트셀러 한권은 읽자.

        남들이 보았다는 공연 한 가지는 보자. 영화라는 건 스크린이라는 메카니즘을 통해서 우리가 접하는

        장르라고 한다면 공연은 막 바로 사물놀이가 됐던 무슨 마당놀이가 됐던 스케이트가 됐던 무슨 연극 오페라

        모든 공연 장르 가운데에서 요즘 얼마나 다채롭습니까? 명성황후가 브로드웨이에 가서 엄청난 장기공연을

        하고 왔다네 이러는데 그것이 뭐 어쩌자는 건지 전혀 모르고 산다는 것은 너무 무심한 거예요. 공연하나는

        꼭 보자. 그 다음에 이상벽이도 밥 먹고 살아야 되니까 어디 가서든지 전시장 한군데는 꼭 가자. 사진전이

        됐던 회화전이 됐던 붓글시전이 됐던 조각전이 됐던 전시장이 갤러리가 온 동네 막 있는데 지나가면서

        포스터 한번 쓰윽 보고 “가자 저거 보고 갈까?” “말라꼬?” 이 ‘말라꼬’가 문제예요. 꼭 가서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처럼 강의가 있는 곳은 꼭 한군데를 찾아가십시오. 일단 이런 오픈된 장소에서의 강의뿐만

        아니라 방송에서도 아침마당에서도 하고 좋은 아침에서도 하고 요즘 특강을 참 많이 해요.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이상벽이 와서 한 시간을 떠들려고 하면 얼마나 지따나 연구해 갖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여기를 왔겠습니까. 여러분은 한 번에 바로 내 걸로 만드는 거니까 아주 손쉬운 거래에요. 이거는...

        그 헬렌켈러 여사가 그랬다는 거 아닙니까. 백권의 책을 읽는 시간을 줄여서 백권의 책을 읽은 사람하고

        한 시간을 대화하라. 경제적인 논리예요.



강의를 많이 들으시면 여러분이 미처 못 봤던 세상을 그분의 얘기를 통해서 들을 수 있다 그거예요.

        다섯 가지 중에서 한 달에 셋은 꼭 하십시오. 강의는 여기 오면 큰스님께서 늘 법문을 하시니까 그걸로

        충분할거고 이 큰절에 갤러리가 있더라구요, 늘상 작품은 바뀌잖아요. 큰스님 작품부터 근년에 젊은 작가들

        거 모든 거 박물관도 있구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처님 한분 한분의 모습이 다 다르고 의미가 다

        다를거라구요. 서적을 돋보기 안경을 끼고서라도 유심히 보면 맛이 날거라구요. 이 안이 사실은 우리

        법당만큼 훌륭한 예술의 전당이 없어요. 부처님만큼 훌륭한 조각품이 없고 이 단청해 놓은 것만큼 훌륭한

        회화가 없고 승무만큼 멋드러진 무용이 없고 큰스님하고 동자스님하고 대웅전에서 염불을 하시면

        그것처럼 훌륭한 합창이 없어요. 중간 중간에 띵거랑 인경소리 나면서 마하반야바라밀다~~ 하면 옆에

        동자스님이 마하반야바라밀다~~이게 불협화음 중에 화음이 되면서 멀리서 들으면 정말 고즈넉하다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가 실감이 나는.. 그래서 우리가 성당이나 교회를 갈 기회는 별로 없지만 명산에는

        반드시 명찰이 있다 그거예요. 그래서 거기에는 신부님도 오시고 목사님도 오시고 오신다구요.

        와서 샘물이라도 한 그릇 떠먹고 가고. 왜? 어느 분야에 어느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꼭 절 한군데는 다녀라.

        저는 그렇게 권해요. 부처님을 믿고 이런 걸 떠나서 모든 예술의 보물창고다. 우리시대에 세세년년

        오늘까지 온 여긴 유서 깊은 박물관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드나들어라. 저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런지 요새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절을 많이 오시더라구요. 아까 말씀드렸던 그 다섯 가지의

        문화 컨텐츠를 통해서 새로운 이모작의 씨앗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 가시란 겁니다.

        이제 끝으로 제가 우리하고 위도가 같으니까 정서적으로 비슷한

        일본에서 근래에 나왔던 책 중에 ‘어떻게 늙을 것인가’라는 대목을 이용해서 전달해 드리는 것으로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요기서 나는 웬지 안 죽을 것 같은 사람만 손들어 보세요. 나는

        안 죽을 것 같다. 죽음의 그림자가 40대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다고 그러지 않아요? 40대 때는 저 멀리

        누구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 부터 시작해서 50대 되면 우리 큰아버님께서 조금 더 지나면 우리

        아버님께서 조금 더 지나면 우리 형이 이렇게 해서 나까지 온다 말이예요. 서서히 다가오는 거니까

        40 이전에는 내가 왜 죽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전쟁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전쟁이냐? 자동차 전쟁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월남전에서 죽은 한국병사가 오천 명입니다.

        우리가 일 년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만 명입니다. 월남전을 두 배로 치르는데 아무도 그걸 체감을

        못해요.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장애인이 연10만이라고 해요. 우리가 편리하자고 만든 자동차, 문명의 이기가

        이제 문명의 흉기가 되어 막 돌아다녀요. 누가 교통사고로 죽었대. 그렇게 남 말 하듯이 할 게 아니에요.

        막 날라 다니는 이 자동차 사이에서 아주 곡예를 하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늘그막을 언제 어떻게 죽을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죠. 아무도 모르지만 늙었다고 가정을 하면

        이 몇 가지는 꼭 염두에 둬라.

        첫번째가 낙(樂)..일락..일락이 뭐냐 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꼭 내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하나 찾아라.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또 뭘 해 먹나.. 그거 말고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오늘 하루를 이것으로 의미있게

        시작하리라는 내 나름의 즐거움이 하나는 있어야 된다. 새벽에 예불 모시러 법당에 올라가면 거기 가서

        비로소 실감을 할 거예요. 집에서 아침에 일곱시나 여덟시쯤에 일어날 때는 바깥에 창문을 잘 안 내다보게

        되니까 바로 쌀독으로 들어가서 김치 꺼내고 할 일이 많잖아요.

        어쩌다 보면 때가 되어서 점심때 되면 국수를 해먹을까 이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날이 그날처럼

        반복되는 게 하루라면 산에 가서 하루를 이른 새벽에 맞이할 때는 하루가 이렇게 소중하구나.

        이 하루를 못보고 어제 돌아가신 분은 정말 억울하겠다. 그런 생각이 되잖아요. 그 하루를 정말 꽉

        채울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낙을 하나 만들어라. 매일 나는 불교 공부하는 게 낙이야. 괜찮아요.

        붓글씨가 됐던 꽃꽂이가 됐던 꼭 가시적인 거 말고 그냥..

        일본 TV를 보니까 어떤 노인 한 분이 고위 공직자 출신이라고 그러는데 매일 다니면서 하루 알루미늄캔

        백 개씩 줍는 게 그분 일과래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왜 그걸 하십니까? 그러니까 일번은 한시적

        공무원을 했던 사람으로서 국가적인 재활용품을 내 스스로 수거를 한다는 차원.. 또 하나는 내게 손주가

        있는데 이거 애들 발 찔릴까봐 이걸 다 치워주는 거 하나.. 그 다음에 나를 위해서 이거 줍느라고 하루에

        백번을 허리운동을 한대요. 이 세 가지 때문에 나는 이것을 합니다. 분명히 할 일이 있으신 분이잖아요.

        오늘 여든개를 주웠으면 죽었으면 죽었지 백 개를 채운다는 거예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분의 일과는

        빡빡합니다. 대부분 다 수거해 가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워내기가 쉽지 않은 요즘에 그분은 그걸

        반드시 채우는 그런 일과를 하신다 그래요. 그러니까 뭘 할 것인지에 대해선 너무 다채롭게 많습니다.

        한 가지 낙은 가져라.

        그 다음에 두번째가 우(友)..벗..

        젊었을 적엔 종적인 연대 뭐 청와대 누구, 세무서에 누구, 경찰서에 누구 이 줄을 잘 서야 돼. 애들 때는..

        그런데 나이 먹어서는 종적인 연대가 아니라 횡적인 연대..같은 종씨 같은 고향 사람, 같은 우리 불자,

        남자들 같으면 군대 동기생 이런 식으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요지부동일 수 있는 횡적인 친구 연대를

        잘 갖춘 사람이 사는 사람이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같이 밥 한 그릇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 잘못 산 사람이다. 어떻게 늙을 것이냐? 곱게 늙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곱게 늙기가 쉽지가 않은 거래요. 노인들끼리 있다가 막 언성 높이다가 곱게 늙어라 이놈아 그러면 꼼짝

        못해요. 그렇게 어려운 노릇이 곱게 늙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격과 내공을 통해서 곱게 늙을 양을

        하자면 정말 열심히 절에 다니고요. 열심히 나를 비우는 일을 계속 하면 허리는 아플지언정 얼굴은

        고와질 거라구요. 제 생각입니다마는 곱게 늙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친구를 어떻게

        늘그막에 그렇게 건사를 잘 하느냐? 모든 걸 구체화하라는 거예요. 우리 아주머니들 인사하는 거 보면

        참 희한해요.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끼리 만나면 “어디 가십니까?” 남 이사 어딜 가든 그걸 알아서 뭐한다고

        “어딜가십니까?” 그런다고 그쪽에선 청와대 가는 것도 아니고 좀 갈춰 줬으면 좋겠구만 “어디 좀 갑니다.”

        절대 또 안 가르쳐주네.(웃음~) 안 가르쳐주는 뒤에다 대고 “댕기 오이소.” 이거는 이웃끼리 나누는 인사

        수준이 아니라는 거예요. 적어도 서로 마음이 교감할 수 있는 인사 수준이라는 거는 첫 번째는 상대편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인사가 제일 감동적인 인사라 그럽니다. 이전의 건강상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구

        어쩐 일로 얼굴이 그렇게 망가지셨습니까? 걱정 있습니까? 걱정 있으면 같이 합시다. 뭔지 모르지만... 서로

        이전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그 부분에서 언급할 수 있는 수준의 건강을 챙겨주는 인사가 제일가는 인사다.

        두 번째는 가족 걱정해주는 인사.. 요번에 둘째 애가 고3이 되었다는데 공부는 잘 합니까? 우리 집에 한번

        보내주면 삼겹살 한번 사께..뭔가 역할을 찾는 거예요. 실질적인 이웃과의 연대감에 매개체가 된다는 거예요.

        세 번째가 직업에 관한 걱정을 해 주는 인사..

        주인아저씨 직장은 잘 다니십니까? 둘째 아들 어디 취직 했다는데 월급은 잘 나옵니까? 인사를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인사를 하자 그거예요.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라는 겁니다. 친구를 잘 두라는 겁니다.

        일이란 건 모두 상호적인 거예요. 내가 그 사람한테 아무것도 안 해줬는데 내 죽었는데 그 사람이 피눈물

        흘릴 이유가 없잖아요. 내가 죽었을 때 그이가 와서 그렇게 할 거라는 건 내가 그쪽한테 뭔가 했기

        때문에 일거 아닙니까 그죠? 서로 빗장을 열어놓고 마음을 교감할 용의가 있어야 되는데 딱 잠궈

        놓고 니꺼 니 먹고 살고 나는 내꺼 먹고 산다. 이렇게 가면은 주변이 허해지는 거야. 주변에 아무도

        없어지는 겁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두어라. 그게 참 중요한 대목인데 일모작에서 잘 되어야

        이모작으로 연결이 되는 사안이긴 합니다.

        세 번째가 재(財)..재산..

       남자나 여자나 지갑 두께 하고 어깨 높이가 비례한다고 그러잖아요. 늘그막에 적어도 품위 유지할 만큼은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이 세상에 전부냐? 그렇게 말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만들게 한 겁니다.

        돈의 위력이랄 것도 없이 돈의 현실적인 필요만큼은 갖고 있어라는 거예요. 일모작 때 잘 해야 돼요.

        네 번째가 남자는 처 여자는 남편..

        둘이 아름다운 뒷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 한쪽이 먼저 훼손이 되면 안 된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그러한 상황에서 아름다운 황혼의 뒷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 사실

        운명적인 거라고 한다면 인력으로 어려운 노릇이기는 해요. 그러나 그럴려고 노력은 하자 그거예요.

        늙으면 늙을수록 정이 멀어지잖아요. 말 수도 적어지고.. 외국에는 늙을수록 더 멋있잖아요.

        다섯 번째는 건강한 사람이 최고이다.

        다섯 가지를 다 말씀을 드렸는데 한 가지가 빠진 게 있어요. 늘그막에 자식..자식이 빠진 거예요.

        자식이 왜 빠져 있느냐? 자식이란 낳자마자 일생을 애프터서비스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항상

        운신의 자식이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배제하는 이유가 뭘까요? 자식 의존적으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결자해지 차원에서 낳은 쪽에서 일방적으로 책임지는 거 맞습니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하고 애들이 잘 되는 건 큰 복입니다. 애를 의식을 하고 애 때문에 살았고 애로 인해서 여생을 해결하리라는

        건 천부당 만부당한 얘기다. 생각을 하지 말아라. 기대한 것만큼 실망이 크다 자식에 관한 한..

        아까 말씀드렸던 다섯 가지 비교치와 다섯 가지 늘그막에 덕목을 잘 염두에 두고 우리 이 나라의 기초적인

        자원인 우리 모두를 금쪽같이 아끼면서 부처님 앞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법문녹취및 기록: 94기 대각수 님